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주 5일제가 우리나라에 완전히 자리잡은 지 겨우 10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되었던 주 6일제와는 달리, 주 5일제는 어느새 ‘재택근무‘라는 변화의 물결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저 ‘일주일에 몇 시간 근무할 것인지’가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일할 것인지 시간과 장소에 대한 개념 자체를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나라 출퇴근 문화와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바이브컴퍼니 송길영 부사장의 강연 내용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숙명이었던 출근, 이제는 판도가 바뀌고 있다
예전에 일요일 밤에 하던 프로그램인 ‘개그 콘서트’ 끝나는 음악을 들으면 “내일이 또 오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싫었어요. 그 정도로 출근은 모두가 숙명적으로 해내야 하는 일이었어요. 매일 사무실로 와서 정해진 내 자리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일하는 것이 기본이었던 거죠.
하지만 이제는 일하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최근에 SNS에서 1990년 수해가 왔을 때 출근하는 서울 시민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당히 인기였어요. 그만큼 그때는 몇 시간이 걸리던 회사는 당연히 가야하는 곳이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출근에 대한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일단 장소에 대한 것들이 예전과 달라요. 예를 들어서 집이든, 카페든, 위성 오피스든, 곳곳에서 일할 수 있고요.
영국에 계신 분이 “2주간 한국에 잠깐 갈게요.”라고 하셔서 휴가인 줄 알았더니 한국에서 ‘로그인’으로 출근을 해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일하는 장소에 대한 것들이 바뀌었죠. 어떻게 로그인을 할 지 정해져 있다면 ‘집중 근무 시간’ 외의 시간은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방식들도 나오기 시작했고요.
이제는 재택근무, 자율 출퇴근, 스마트 오피스 등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고수해오던 일하는 방법들에 대해 다시 돌아봐야 되겠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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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에 대한 인식이 변하기 시작했다
재택근무라는 말 자체가 한국에서는 사실 거의 안 쓰이던 말이에요. 데이터를 보면 팬데믹 전까지는 재택근무라는 단어가 마치 유니콘처럼 사전에는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쓰지 않는 단어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사용할 때는 ‘고수익’, ‘소자본’, ‘알바’, ‘투자비’ 등의 단어와 연관되어 낚는 글, 위험한 글처럼 쓰였죠.
재밌는 것은 우리는 이미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한참 전에 갖추었다는 거예요.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화상 회의 시스템은 2천 년 대 초반에 개발되었지만 근 20년 동안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셈이에요. 팬데믹으로 인해 가상으로라도 일을 해보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고, 훌륭한 형태의 대안이 실질적으로 쓰이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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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직장인이 재택근무를 좋아하는 이유
팬데믹이 끝나고 엔데믹에 접어들면서 많은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출근하라고 했을 때 갈등이 엄청났어요.
90년대만 하더라도 회사의 복지를 얘기할 때, ‘체육대회, 동호회, 식사 3끼 제공’ 이런 것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식사 세 끼를 준다고하면 지원자가 없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만큼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다는 얘기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이 새로운 일의 방식을 경험하면서 전에 해왔던 관습적인 일들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월요일이 되면 출근을 하고, 금요일이면 다 같이 술 한 잔 하고, 주말에는 회사 등산 동호회를 참여하는 식으로 끈끈함을 24시간 내내 이어가는 방식 같은 것들이요.
그리고 재택근무를 하면 ‘선배를 안 보는 게 좋다’고 출퇴근하지 않는 걸 선호하는 직장인들도 있어요. 선배가 다 싫은 게 아니라 위계질서를 지나치게 강요하는 분위기나 거기에서 생기는 갈등을 의미한다고 봐요.
요즘 직장인들이 싫어하는 말이 ‘가족 같은 회사’ 라고 해요. 회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높은 수준의 친밀도를 가져야 되고 끈끈함을 기반으로 같이 연결돼 있다고 했을 때 사실 굉장한 수준의 피로도를 야기하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과거와 달리 온라인을 통해서 관계가 대폭 넓어졌기 때문에 회의를 하더라로 여러 국가의 사람들과 동시에 얘기하는 경우도 있고, 모든 사람들과 예전과 같은 끈끈함을 요구할 수도,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이제 회사 내의 관계는 수직적이기 보다는 수평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졌어요. 상사, 부하 직원, 후배 등 직급과 연결된 관계에서 벗어나 모두 나의 ‘동료’라는 거죠.
물론 직급을 없애고 이름으로만 부르는 시도를 하는 회사들도 여전히 머릿속에서 위계 질서를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이런 시도들의 의미가 있어요. 구성원 개개인을 존중하는 문화를 정착하는 과정이라고 봐요. 그래서 과거에는 기수 문화, 학연, 혈연, 지연 같은 형태의 것들이 제한된 형태의 권력을 독점하는 구도였다면 이젠 다 같이 평등하게 본인의 선택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것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주 6일제에서 주 5일제로의 변화보다 ‘재택근무’, ‘원격근무’로의 변화는 더욱 빠르고 깊게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바꾸고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시작하게 되었지만 이 변화는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일하는 방식에 대한 가능성을 알려주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변화의 흐름은 우리 사회를 얼마나 바꿔놓을까요? 시간과 장소에 상관 없이 일하는 미래도 주 5일제처럼 당연하게 여겨지는 날이 곧 오지 않을까요?